어느 소설 속 핵잠수함의 마지막 임무












오스트레일리아의 소설 작가 네빌 슈트가 쓴`해변에서`는 근미래에 핵전쟁으로 북반구 국가들이이미 다 멸망해버린 세계가 배경이다.

남아프리카와 남미, 호주 등의 대양주 국가들만문명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방사능이서서히 적도를 넘어 내려오고 있다.

소설 속 호주는 모든 행정/군사 기능을 멜버른으로 옮긴 상황인데 소설의 상황이 진행될수록 호주 북부의 도시들이차례차례 연락이 끊기는 묘사를 통해 소리없이다가오는 죽음의 압박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없는 상황에서사람들은 애써 일상처럼 정원을 가꾸거나, 술을 마시거나,카페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이미 체념이 서려있다. 길어봐야 일 년 정도면 호주 남단 멜버른을 넘어뉴질랜드, 남극까지 모두 방사능이 뒤덮고지구에서 인간이 다 사라질 예정이다.

핵전쟁 당시 해상에서 작전 수행 중이던미국 핵잠수함 `스콜피언`은 본토와 연락이 끊기면서보급을 위해 그나마 가까운 위치였던 호주에들른 이후로 몇 안되게 남은 미 해군의 생존함이 된다.

호주 해군의 밑으로 들어간 스콜피언 생존자들은 마지막 작전을 전달 받는다. 미국 시애틀의 군 무전 기지에서 나오는 간헐적이면서도, 반복적으로 접수되는 어떤 특정한 신호의 근원을 탐색하라는 지시다. 이미 전력원도, 가동할 사람도 없는 북반구에서 신호가 온다는 것은 기대할 것이 못되지만 호주 정부는 실낱 같은 희망을 걸고 1만 6,000km를 가로지르는 모험을 감수하기로 한다.

북반구는 이미 대륙과 바다, 공기 할 것 없이오염된 상태라 잠수함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수면 밑에서 잠항을 해야 하는데 약 27일 동안 잠수해야 하는 작전은승조원들의 건강/정신상태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절대 쉽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스콜피언 호는 준비를 마치고 출항한다.

시애틀에 도착한 스콜피언 호가 잠망경으로본 해안가는 전쟁의 흔적 없이모든 것이 멀쩡한 모습이다. 단지 사람도, 새도, 어떤 동물이나생명의 흔적도 없을 뿐이다. 스콜피언 호는 중위 한 명에게 방호복을입히고 육상으로 올려 보내무전국을 수색하게 한다.

무전국의 통신실 2층에서 중위가 본 광경은딱히 특별할 것 없는 전형적인 폐허의 모습이었다. 무선장비 하나가 창가에 있었는데 송신대의 끝이바람에 흔들리는 창문 바로 밑에 있었다. 방호복의 장갑으로 창문을 슥 건드리자송신대가 닿으며 흔들렸고, 전류계의 바늘이순간 끝까지 올라갔다. 창문을 다시 놓자, 바늘은 다시 0으로 내려갔다.때론 불규칙하게 때론 규칙적으로 부는바람이 무작위적이면서도 규칙적인 듯한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세상의 반대편에서 1만 6,000km를 달려와서 확인해야 했던 진실은 그것 뿐이었다. 그렇게 6개월 뒤, 방사능은 멜버른까지 뒤덮었다.

종말문학 `해변에서`는 최후의 인간 도시들이 아주 천천히, 차이를 느끼지 못할 만큼의 느린 속도로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여러 등장인물들과 사건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형상도, 색도, 느껴지지도 않는 방사능은매순간 남쪽으로 내려오지만 멜버른의 사람들은자신들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머리론 이해하면서도감정적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며 살아간다. 400여 페이지의 이 책 내내 멜버른과지구는 어떤 극적인 사건도, 비극적인 대재난 없이천천히 죽음을 향해간다. 어처구니 없고 허무하기까지 한 스콜피언 호의ㅣ

여정을 통해 인간들이 무기력하게죽어가야 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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