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역사문화대전 중 `술도가를 폐업한 뒤에도 금정산성 마을 사람들은 누룩을 빚어야 하였는데, 생계가 막막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성 누룩은 허가를 받지 않은 무허가 제조였고, 이 때문에 세무 공무원과 막걸리 제조업자들의 단속 대상이 되었다. 지금도 전남선씨는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몸서리를 치곤 한다. “아이고, 그기사[그거야] 말로는 못 해. 세무서서 누룩 뺏으러 오고, 벌금 매길라고 오고 했어. 단속반이 오면 누룩을 산에다 갖다 놓기도 했어, 안 뺏길라고. 그때는 문패를 달아 놓은 집이 없어. 와 그라노 하면 문패를 보고 이름 적어서 벌금을 매기니까. 지금은 문패를 달지만 그때는 못 달았지. 나도 누룩 뺏기기도 하고, 벌금도 내고, 법원까지도 가 보고 다 했어. 이 동네 사람들 모두 다 한 번씩은 그랬어, 얼추. 많이 그랬어.” 누룩 단속반은 그 시절 금정산성 마을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누룩을 숨기기 위하여 마을 사람들은 아기가 태어난 집인 양 금줄에 고추를 꽂아 단속반의 출입을 막으려 한 이야기며, 누룩을 숨긴 이불 속에 드러누운 아낙의 이야기는 유청길 사장의 어린 시절 기억 가운데 선연히 남아 있다. 당시 단속반 가운데 세무서 직원은 소수이고 대부분 막걸리 제조업자들이었다고 한다. 이들의 주요 관심사는 누룩이었다. 압수한 산성 누룩을 자신의 양조장에 가져가서 막걸리를 담그는 데 썼기 때문이다. 심지어 담가 놓은 술 단지까지 들고 갔기 때문에 단속반이 한번 들이닥치면 금정산성 마을 사람들이 입는 경제적 타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